강아지 · 2026-10-19
강아지는 사람 말을 몇 개나 알아들을까? 단어 학습 연구가 밝힌 것
1,000개 넘는 단어를 구별했다는 보더콜리 '체이서' 연구부터 일반 가정견의 평균 학습량까지, 강아지가 사람 말을 이해하는 방식과 그 한계를 정리합니다.

"산책" 소리만 나와도 현관으로 달려가는데, "산책은 이따 가자"라고 해도 똑같이 달려간다면 이 개는 말을 알아들은 걸까요, 못 알아들은 걸까요? 보호자라면 한 번쯤 해봤을 고민이고, 동물행동학자들이 실제로 실험실에서 붙잡고 있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나온 연구들을 보면 답은 "몇 개"라는 숫자보다 "알아듣는다는 게 무슨 뜻이냐"에 더 가까이 있습니다.

장난감 이름 1,022개를 외운 보더콜리, 체이서
이 분야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개는 미국의 보더콜리 체이서(Chaser)입니다. 2011년 학술지 Behavioural Processes에 실린 Pilley와 Reid의 논문에 따르면, 체이서는 3년 동안의 훈련으로 1,022개 사물의 고유한 이름을 익히고 기억했습니다.
검증 방식은 이렇습니다. 학습한 장난감 가운데 20개를 무작위로 고른 뒤 체이서가 볼 수 없는 다른 방에 두고, 이름을 하나씩 불러 가져오게 합니다. 이 테스트가 838회 반복됐고, 체이서는 매번 20개 중 최소 18개(90%) 이상을 정확히 가져왔습니다. 우연히 맞힐 수 있는 수준과는 거리가 먼 결과입니다.
숫자보다 더 흥미로운 건 이해의 구조입니다. 체이서는 물건의 이름(명사)과 "가져와" 같은 동작 명령을 따로따로 구분했습니다. 같은 장난감이라도 명령에 따라 다르게 행동할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또 개별 이름뿐 아니라 "toy"처럼 여러 물건을 묶는 범주 명사도 적용했고, 처음 듣는 이름이 나오면 이미 이름을 아는 물건들을 제외하고 남은 낯선 물건을 고르는 배제 추론도 보여줬습니다. 다만 이렇게 추론으로 알아낸 새 이름은 오래 기억되지 않았습니다.
체이서를 보고 "보더콜리는 다 저렇다"고 하면 안 되는 이유
체이서의 기록은 놀랍지만, 그 배경을 같이 봐야 합니다. 훈련을 맡은 사람은 은퇴한 심리학 교수 John Pilley였고, 생후 8주부터 하루 4~5시간씩, 놀이를 보상으로 삼아 3년간 사실상 전담으로 가르쳤습니다. 보통 가정에서는 재현하기 어려운 조건입니다.
체이서는 한 마리의 예외적인 개체입니다. 이 결과를 "보더콜리라는 품종의 능력"으로 일반화할 근거는 없고, 품종별 단어 학습 능력을 체계적으로 비교한 연구도 아직 없습니다. 거꾸로 흥미로운 점도 있습니다. 연구진은 훈련을 멈춘 이유가 개의 한계에 도달해서가 아니라 연구자의 시간이 부족해서였다고 밝혔습니다. 즉 1,022개는 상한선이 아니라 "여기까지 해봤다"는 기록이고, 개가 어디까지 배울 수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체이서보다 먼저 유명해진 리코, 그리고 반론
체이서 이전에는 독일의 보더콜리 리코(Rico)가 있었습니다. 2004년 Science에 실린 Kaminski, Call, Fischer의 연구에서 리코는 200개 이상의 사물 이름을 알고 있었고, 40번의 시험 중 37번을 정확히 맞혔습니다.
이 연구가 화제가 된 건 "빠른 매핑(fast mapping)" 때문이었습니다. 사람 아이가 처음 듣는 단어를 몇 번의 노출만으로 대상과 연결하는 능력을 말하는데, 리코는 처음 보는 물건의 이름을 듣고 고르는 시험에서 10번 중 7번 성공했고, 4주가 지난 뒤에도 일부를 기억했습니다.
하지만 이 해석에는 반론이 있습니다. Griebel과 Oller는 2012년 PLOS ONE에 요크셔테리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을 발표하며, 리코 연구에서는 엄밀한 의미의 빠른 매핑 과제가 실제로 수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들의 실험에 참여한 요크셔테리어 베일리(Bailey)는 처음 듣는 이름에 낯선 물건을 고르는 배제 시험과 그 이름을 기억하는 보유 시험은 통과했지만, 단어와 대상을 진짜로 연결하는지 확인하는 매핑 과제에서는 실패했습니다. 배제로 고를 수 있다는 것과 단어를 익혔다는 것은 별개라는 이야기입니다. 리코가 아이처럼 단어를 빠르게 추론했다는 주장은 학계에서 합의된 결론이 아니라, 여전히 논쟁 중인 해석이라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럼 우리 집 개는? 평균 89개라는 숫자 읽는 법
체이서나 리코 같은 개는 "재능 있는 단어 학습견"이라는 별도 범주로 연구됩니다. 헝가리 ELTE 대학의 Fugazza 연구팀이 2021년 Scientific Reports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이미 50개가량의 단어를 알고 있던 이런 개 두 마리(Whisky, Vicky Nina)가 보호자와 놀이하는 중에 새 장난감 이름을 네 번 듣고 그 이름을 익혔습니다. 반면 장난감을 보여주며 "이게 ○○야"라고 직접 알려주지 않고, 아는 물건들 사이에서 낯선 물건을 골라 추론하게 하는 배제 방식으로 노출했을 때는 두 마리 모두 이름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연구진은 빠른 단어 학습에는 사회적 맥락이 필요하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다만 놀이 중에 배운 이름도 10분이 지나자 상당수를 잊어버렸고, 같은 방식으로 일반 가정견 20마리를 테스트했을 때는 성과가 훨씬 낮았습니다. 장난감 이름을 줄줄이 외우는 능력은 개라면 누구나 가진 평범한 능력이라기보다 소수에게서 두드러지는 특성에 가깝다는 이야기입니다.
일반 가정견에 대해 가장 자주 인용되는 숫자는 "89개"입니다. 캐나다 Dalhousie 대학의 Reeve와 Jacques가 2022년 Applied Animal Behaviour Science에 발표한 연구로, 보호자 165명에게 172개 단어가 적힌 목록을 주고 자기 개가 일관되게 반응한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고르게 했습니다. 평균은 89개였고, 적게는 15개에서 많게는 215개까지 차이가 컸습니다. 작업견은 평균 약 120개, 작업견이 아닌 개는 약 80개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꼭 짚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 수치는 개를 직접 시험한 결과가 아니라 보호자의 주관적 판단을 모은 설문 결과입니다. 연구진도 개가 목록의 단어를 모두 이해하거나 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명시했습니다. "평균적인 개는 89개 단어를 이해한다"보다는 "보호자들은 자기 개가 평균 89개 단어에 반응한다고 느낀다"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앞에서 말한 "산책" 사례처럼, 보호자가 단어에 반응한다고 여기는 순간에 개는 단어가 아니라 목줄을 집는 손이나 시간대를 읽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뇌를 들여다보니 — 단어의 뜻과 말투를 따로 듣는다
행동만으로는 "알아들었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보니, 연구자들은 뇌를 직접 보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Science에 실린 Andics 연구팀의 연구는 개 13마리의 뇌를 fMRI로 촬영하며 단어를 들려줬습니다.
결과는 두 가지 처리가 분리돼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어의 의미는 주로 좌측 반구에서, 말투(억양)는 우측 청각 영역에서 처리됐습니다. 더 흥미로운 건 보상과 관련된 뇌 영역의 반응입니다. 이 영역은 칭찬하는 단어를 칭찬하는 말투로 들려줬을 때만 활성화됐고, 칭찬 단어를 무덤덤한 말투로 하거나 의미 없는 단어를 칭찬 말투로 했을 때는 그만큼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개가 "말투만" 듣는 게 아니라 단어와 말투를 함께 따져본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입니다.
다만 공동저자인 Miklósi는 뇌가 활성화됐다는 사실이 곧 이해를 확정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뇌 영상은 "무언가 다르게 처리되고 있다"는 걸 보여줄 뿐, 개가 그 단어를 사람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증거로 곧바로 읽을 수는 없습니다.

가져오기 대신 뇌파로 묻다 — 이름을 들으면 물건을 떠올릴까
2024년 3월 Current Biology에 발표된 Boros, Magyari 등의 연구는 질문하는 방식을 바꿨습니다. 그동안 실험실에서 이름을 듣고 물건을 가져오게 하는 시험을 해보면, 체이서 같은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개는 우연 수준의 정확도에 머물렀습니다. 그렇다면 개가 정말 단어를 모르는 건지, 아니면 가져오기라는 행동 시험이 개의 이해를 제대로 잡아내지 못하는 건지 알기 어렵습니다. 연구팀이 행동을 요구하지 않는 비침습 뇌파(EEG) 측정을 택한 이유입니다.
방식은 이렇습니다. 보호자가 자기 개가 이미 안다고 한 장난감 이름을 말한 뒤, 그 이름과 일치하는 물건 또는 다른 물건을 보여주며 개의 뇌 반응을 쟀습니다.
18마리 중 14마리에서, 이름과 물건이 일치할 때와 어긋날 때 뇌 반응이 달랐습니다. 사람이 단어를 듣고 뜻과 맞지 않는 대상을 볼 때 나타나는 패턴과 비슷한 차이였습니다. 이 차이는 개가 아는 단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나타났습니다. "어휘가 많은 개에게서만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라는 예상은 지지되지 않은 셈입니다.
1저자 Boros는 "개는 이름을 들으면 그 물건에 대한 기억을 활성화한다"고 설명했고, Magyari는 "당신의 개는 겉으로 드러내는 것보다 더 많이 이해하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연구를 "모든 개가 단어를 이해한다"는 결론으로 받아들이기는 이릅니다. 연구에서 확인한 것은 일종의 암묵적인 반응이고, 어휘량과 무관하다는 결과도 아직 한 편의 연구에서 나온 것이라 추가 검증이 필요합니다. 반론도 나왔습니다. 애리조나주립대의 Clive Wynne은 CNN 인터뷰에서, 이 결과는 개가 단어의 '의미'를 이해한다는 증거가 아니라 소리와 물건 사이의 조건화된 연합으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래도 "가져오기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는 전제만으로는 개의 머릿속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은 짚어볼 만합니다.
말과 손짓이 엇갈리면 개는 손을 본다
일상에서 "말을 안 듣는다"고 느끼는 순간 중 상당수는 단어 자체보다 신호가 섞여서 생기는지도 모릅니다. 2016년 Animal Cognition에 실린 D'Aniello 연구팀의 실험은 이탈리아 수상구조견 학교의 래브라도 리트리버와 골든 리트리버 25마리를 대상으로 했습니다.
손짓만으로 명령했을 때 정확도는 99%, 음성만으로 했을 때는 82%였습니다. 그리고 손짓과 음성이 서로 다른 명령을 가리키도록 충돌시키자, 개들은 70%의 시행에서 손짓을 따랐습니다.
집에서 "앉아"라고 말하면서 무심코 손을 아래로 내리거나 몸을 숙이는 보호자가 많습니다. 그런 습관이 쌓이면 개는 말보다 몸짓을 기준으로 배웠을 수 있고, 손이 바쁜 상황에서 말로만 하면 반응이 늦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저희 집 신디도 "앉아"를 말로만 할 때보다 손을 함께 내릴 때 훨씬 빨리 앉더라고요. 이런 경우는 이해력이 부족하다기보다 신호를 해석하는 우선순위가 다르다고 보는 편이 맞습니다.
잘 알아듣던 말에 갑자기 반응이 없다면
늘 반응하던 이름이나 명령에 어느 날부터 반응하지 않는다면, 훈련이 부족해졌다거나 고집이 생겼다고 단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청력이 떨어졌을 수도 있고, 나이 든 개라면 노령견 인지기능장애(CCDS) 같은 변화일 가능성도 있으며, 통증이나 다른 질병 때문에 반응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일 수 있어서 겉모습만으로 가려내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는 다시 훈련하기보다 수의사 진료를 먼저 받아보는 편이 순서에 맞습니다. 언제부터 반응이 줄었는지, 어떤 말에 반응하지 않는지, 다른 행동 변화가 함께 나타나는지 관찰해 두면 진료 때 설명하기 수월합니다. 노령견의 인지 변화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지는 레이지펫의 노령견 인지기능장애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반대로 특별한 변화 없이 그냥 "우리 개는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다"는 정도라면,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합니다. 명령할 때 말과 손짓이 같은 뜻을 가리키는지, 같은 행동에 매번 같은 단어를 쓰는지 한번 점검해보는 것입니다. 단어를 잘 배우는 개들조차 혼자 추론할 때보다 보호자와 놀며 들을 때 이름을 익혔다는 연구 결과를 떠올리면, 일관된 말과 몸짓으로 함께 놀아주는 시간이 가장 현실적인 출발점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수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반려견의 행동이나 건강에 변화가 있다면 수의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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