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 2026-09-21

고양이는 왜 상자를 좋아할까? 스트레스 연구가 밝힌 이유

택배 상자에 들어가 앉는 고양이의 행동이 실은 스트레스 대처와 관련 있다는 것을, 2014년 보호소 연구부터 2021년 착시 도형 실험까지 다섯 편의 연구로 살펴봅니다.

열린 골판지 상자 안에 들어가 앉아 카메라를 바라보는 고양이
Photo by Th2city Santana on Pexels

택배를 뜯고 내용물을 꺼내 놓으면, 정작 고양이가 차지하는 건 내용물이 아니라 빈 상자입니다. 몸이 다 들어가지도 않는 작은 상자에 엉덩이만 걸치고 앉아 있기도 하고, 몇 만 원짜리 방석은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얇은 골판지 바닥에는 한 시간씩 웅크려 있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보호자는 이 장면을 그냥 귀여운 습성 정도로 넘깁니다. 그런데 이 행동은 동물복지 연구에서 꽤 진지하게 다뤄져 왔습니다. 보호소와 동물병원에서 고양이에게 상자를 주느냐 마느냐가 그 고양이의 스트레스 수준을 바꾼다는 결과가 반복해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상자는 장난감이 아니라, 고양이에게는 대처 수단에 가깝습니다.

낮은 골판지 상자 안에 앞발을 걸치고 앉아 카메라를 바라보는 고양이
Photo by Tranmautritam on Pexels

보호소에 갓 들어온 고양이 19마리, 절반에게만 상자를 줬다

이 주제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연구는 2014년 네덜란드에서 나온 것입니다. 연구진은 보호소에 새로 입소한 고양이 19마리를 두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한쪽(10마리)에는 안에 들어가 숨을 수 있는 은신 상자를 주고, 다른 쪽(9마리)에는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두 그룹을 Cat-Stress-Score라는 행동 기반 스트레스 평가 척도로 관찰했습니다. 자세, 귀와 수염의 방향, 호흡, 발성, 몸을 웅크린 정도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신호를 점수로 환산하는 방식입니다.

결과는 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상자를 받은 그룹은 입소 3~4일 차에 스트레스 점수가 대조군보다 유의하게 낮았습니다 (p<0.01). 안정되는 속도에서도 차이가 났습니다. 두 그룹의 평균 점수는 14일 차에 가서야 같은 수준이 됐는데, 상자를 받은 그룹은 이미 3일 차에 그 수준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대조군이 2주 걸려 도달한 지점에 상자군은 사흘 만에 닿은 셈입니다. 연구진은 은신 상자를 “보호소 입소 초기의 스트레스와 새 환경 적응에 중요한 환경 풍부화 도구”로 결론지었습니다. 고양이가 상자를 좋아한다는 인상 수준의 이야기가, 점수로 측정 가능한 차이로 확인된 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상자가 무엇을 대신했느냐입니다. 낯선 공간에 던져진 고양이가 쓸 수 있는 선택지는 많지 않습니다.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숨는 것입니다. 보호소 케이지 안에는 도망칠 곳이 없습니다. 상자는 그 상황에서 ‘숨는다’는 선택지를 되돌려주는 물건이었습니다.

2일 차와 9일 차 — 안정되는 속도의 차이

2019년에는 같은 질문을 더 촘촘하게 확인한 무작위 대조 연구가 PLOS ONE에 발표됐습니다. 고양이 23마리를 은신 상자군 12마리와 대조군 11마리로 나누고, 입소 후 1·2·3·5·7·9·12일 차에 같은 척도로 스트레스를 측정했습니다. 한 번 보고 끝내는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따라간 것입니다.

상자를 받은 그룹은 입소 2일 차에 안정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대조군은 9일 차였습니다. 두 그룹 모두 결국에는 적응했지만, 그 사이에 약 일주일의 간격이 있었습니다. 고양이 입장에서 일주일은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다만 이 연구가 정직하게 남긴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체중 변화에서는 두 그룹 간 유의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대조군이 평균 7.7%, 상자군이 6.3% 줄었고, 전체 고양이의 65%가 5% 이상 체중이 감소했습니다. 입양률과 보호소 체류 기간에서도 차이는 없었습니다. 행동으로 드러나는 스트레스는 분명히 줄었지만, 그렇다고 상자 하나가 입소 스트레스의 모든 결과를 막아주지는 못했다는 뜻입니다.

골판지 상자에 뚫린 구멍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새끼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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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같이 편해졌을까 — 2025년 근거 요약이 남긴 단서

2025년에는 병원에 입원한 고양이를 대상으로 한 연구 5건을 모아 평가한 근거 요약이 Veterinary Evidence에 실렸습니다. 다섯 건 모두 무작위 대조 연구로 발표됐지만, 저자는 그중 세 건의 무작위 배정 방식이 불명확하거나 결함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결론은 “은신 상자가 공포와 스트레스를 줄인다는 중등도 수준의 근거가 있다”였습니다. 근거가 있다고는 하되, ‘강력한’이 아니라 ‘중등도’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있습니다.

행동 지표에서는 효과가 비교적 일관되게 나타났습니다. 특히 공격성을 보이던 고양이에서 스트레스 점수가 더 빠르게 낮아졌습니다. 반면 체온이나 코르티솔 같은 생리적 지표를 측정한 연구 3건 중 2건에서는 두 그룹 사이에 유의한 차이가 없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훨씬 편안해 보이는 것과, 몸속 스트레스 반응까지 실제로 낮아지는 것은 아직 완전히 같은 말이 아닙니다.

그러니 상자의 효과를 이야기할 때는 선을 정확히 그어두는 편이 낫습니다. 확인된 것은 “숨을 곳이 있으면 고양이가 덜 불안해 보이고 더 빨리 안정된다”는 것입니다. “상자를 주면 스트레스가 해결된다”는 그보다 훨씬 큰 주장이고, 현재 근거로는 거기까지 가지 않습니다.

자주 들어가는 상자와 오래 머무는 상자는 달랐다

상자라고 다 같은 상자는 아닙니다. 2015년 집단 사육 환경의 고양이 35마리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50×45×45cm 크기의 골판지 상자를 여러 높이에 배치하고 이용 양상을 관찰했습니다. 은신처가 생기자 고양이들이 쓰는 공간의 범위 자체가 넓어졌고, 가만히 쉬는 행동이 늘었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비용이 거의 들지 않으면서 복지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으로 평가했습니다.

높이에 대한 결과는 한 방향이 아니었습니다. 상자에 들어간 횟수 자체는 바닥(0m)에 놓인 상자가 유의하게 더 많았습니다 (p<0.05). 반대로 일단 들어간 뒤 머문 시간은 0.5m 높이에 놓인 상자가 유의하게 더 길었습니다(p=0.0041). 자주 드나드는 자리와 오래 머무는 자리가 갈렸다는 뜻입니다. 바닥 상자는 지나가다 잠깐 들어가기 쉬운 자리였고, 높은 상자는 자리를 잡고 쉬는 데 쓰인 자리였다고 읽을 수 있습니다. 어느 한쪽이 정답이라기보다, 높이를 나눠서 여러 개 두는 편이 두 쓰임을 모두 남겨두는 방법에 가깝습니다.

이 결과는 국제 고양이 수의 단체들이 정리한 환경 가이드라인과 맞물립니다. 2013년 발표된 고양이 환경적 필요 가이드라인은 건강한 고양이 환경의 다섯 가지 원칙 중 하나로 ‘안전한 공간’을 꼽습니다. 방해받지 않는 사적인 구역이 필요하고, 그 자리는 흔히 높은 곳이며, 골판지 상자나 이동장, 몸이 들어가는 구멍 형태의 은신처가 구체적인 예로 제시됩니다. 이 문서는 환경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일이 선택 사항이 아니라 복지의 필수 요소라고 못 박습니다.

정리하면 고양이가 원하는 조건은 세 가지에 가깝습니다. 몸이 들어가고, 사방이 막혀 시야가 통제되고, 오래 머물 자리라면 주변을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이에 있는 것. 상자는 이 조건을 우연히 전부 만족시키는 물건이고, 그래서 굳이 비싼 숨숨집이 아니어도 되는 것입니다.

나무 선반 위에 몸을 쭉 펴고 누워 쉬고 있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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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가 아니라 ‘네모’에 앉는 걸 수도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 실험이 2021년에 있었습니다. 바닥에 테이프로 사각형만 붙여놔도 고양이가 그 안에 들어가 앉는 현상에서 출발한 연구입니다. 연구진은 코로나19 시기에 보호자들이 집에서 직접 참여하는 시민과학 방식으로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500마리가 신청했고, 6일간의 절차를 끝까지 마친 것은 30마리였습니다.

바닥에 놓인 것은 세 가지였습니다. 실제 테이프로 만든 사각형, 칸니자 착시 도형(네 모서리에만 조각을 놓아 사람 눈에는 사각형 윤곽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선은 없는 도형), 그리고 같은 조각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려놓아 사각형으로 보이지 않게 만든 대조 도형입니다. 도형에 일관되게 반응한 고양이 9마리의 기록을 보면, 진짜 사각형에 8회, 칸니자 착시 도형에 7회 앉았고, 대조 도형에는 1회만 앉았습니다.

해석하자면, 고양이를 끌어당기는 것이 상자라는 ‘물체’가 아니라 ‘닫힌 경계로 보이는 윤곽’ 자체일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다만 이 결과를 그대로 믿기에는 표본이 너무 작습니다. 최종 분석에 들어간 개체가 9마리이고, 실험 환경도 각 가정집이라 통제 수준이 연구실과 같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단서이지 확정된 결론은 아니라는 점은 연구진 스스로도 언급한 부분입니다.

“따뜻해서”라는 설명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상자 사랑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보온입니다. 근거로 인용되는 것은 고양이의 열중성대, 즉 체온 유지에 추가 에너지를 거의 쓰지 않아도 되는 온도 범위가 대략 30~38°C로 알려져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이 쾌적하다고 느끼는 18~25°C보다 한참 높습니다. 우리에게 적당한 실내 온도가 고양이에게는 서늘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고, 좁고 막힌 공간이 체온을 덜 빼앗긴다는 설명은 여기서 나옵니다.

다만 이 설명은 아직 가설 단계로 두는 편이 정확합니다. 상자 안팎의 온도를 직접 측정해서 그 온도 차이가 상자 선호와 얼마나 관련되는지를 검증한 1차 연구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그럴듯하고 생리학적으로 말이 되는 설명이지만, 스트레스 감소 효과처럼 실험으로 뒷받침된 항목과는 근거의 무게가 다릅니다.

문이 열린 등나무 이동장 안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새끼 고양이
Photo by Bunkac Bebec on Pexels

이사·병원·합사 — 상자를 실제로 쓰는 자리

지금까지 소개한 연구는 대부분 보호소나 입원실에서 이뤄졌습니다. 이미 익숙한 집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고양이에게 그대로 일반화하기는 조심스럽습니다. 다만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고양이가 ‘환경이 갑자기 바뀐 상황’에 놓였을 때 은신처가 도움이 됐다는 것입니다. 집에서도 그런 순간은 주기적으로 찾아옵니다.

  • 이사나 가구 배치 변경 직후에는 짐을 다 풀기 전에 은신처부터 먼저 자리를 잡아둡니다. 원래 쓰던 상자나 담요처럼 익숙한 냄새가 밴 물건이면 더 좋습니다.
  • 이동장은 병원 갈 때만 꺼내지 말고 평소에 문을 열어둔 채 거실에 놔둡니다. 좋아하는 담요를 바닥에 깔아 잠자리나 은신처로 쓰게 해두면, 이동장 자체가 낯선 물건이 아니라 익숙한 자리가 됩니다. 이동장 안에 몸을 숨길 만한 것을 함께 넣어주는 방법도 흔히 권장됩니다.
  • 이동장 전체를 얇은 천으로 덮어 시야를 줄이는 것도 같은 원리입니다. 보이지 않으면 대응할 일도 줄어듭니다.
  • 새 반려동물을 들일 때는 기존 고양이가 언제든 물러날 수 있는 은신처를 여러 곳에 미리 만들어둡니다. 도망칠 곳이 없는 상태에서의 대면이 가장 나쁩니다.
  • 은신처는 하나보다 여러 개가 낫고, 바닥 높이와 중간 높이에 나눠 두는 편이 낫습니다. 다묘 가정이라면 고양이 수보다 많게 잡습니다.
  • 출입구가 하나뿐인 깊은 구조보다, 몸을 돌려 나올 수 있거나 출구가 확보된 형태가 안전합니다. 막다른 곳에 몰렸다는 느낌은 은신의 목적과 반대입니다.
  • 고양이가 상자 안에 들어가 있을 때는 꺼내지 않습니다. 숨을 곳이 ‘안전한 곳’으로 기능하려면 그 안에서 방해받지 않는다는 경험이 쌓여야 합니다.
  • 손잡이 구멍이 뚫린 상자, 스테이플러 심이 남은 상자, 비닐 코팅이나 테이프가 많이 붙은 상자는 피합니다. 씹거나 발이 걸릴 수 있습니다.

저희 집 브리티시숏헤어 딸기도 새 캣타워보다 그 캣타워가 들어 있던 상자에서 먼저 잠들었습니다. 이런 장면은 취향의 문제라기보다, 익숙하지 않은 물건이 하나 늘어난 날 고양이가 택하는 기본 전략에 가깝습니다.

언제부터는 상자가 신호가 되는가

숨는 행동 자체는 정상이고 건강한 대처 방식입니다. 문제는 평소와 비교했을 때의 변화입니다. 고양이는 야생에서 약점을 드러내지 않도록 진화한 동물이라, 통증이나 질병이 있어도 겉으로 티를 잘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수의 자료들은 은신을 고양이 통증의 행동 신호 중 하나로 분류합니다. 아파서 숨는 고양이와 편해서 상자에 들어간 고양이가 겉보기에는 비슷해 보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구분의 기준은 상자에 들어갔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패턴이 평소와 달라졌는지입니다. 원래 저녁마다 나와 있던 고양이가 며칠째 나오지 않는다거나, 밥그릇 앞에 오는 횟수가 줄었다거나, 그루밍이 뜸해지고 화장실 이용이 달라졌다면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숨어 있는 시간이 갑자기 길어지면서 식욕 저하나 활동량 감소가 같이 나타난다면 스스로 원인을 추측하기보다 수의사와 상담하는 편이 낫습니다. 특히 고양이가 하루 이상 먹지 않는 상황은 그 자체로 빠른 확인이 필요한 경우로 알려져 있으니, 온라인 정보로 판단하지 말고 병원에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평소와 같은 리듬으로 먹고 자고 놀면서 상자에만 들어가 있다면, 그건 걱정할 일이 아니라 집이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오늘 택배 상자를 버리기 전에 하나만 남겨두는 것, 그리고 이왕이면 바닥과 조금 높은 곳에 하나씩 나눠 두는 것. 연구가 알려주는 실천은 이 정도로 단순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며, 수의학적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반려동물의 상태가 평소와 다르다면 반드시 수의사의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