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 2026-10-18
고양이가 입을 벌리고 멍하게 있는 이유, 플레멘 반응의 정체
빨래 냄새를 맡다가 입을 벌리고 멍해지는 고양이의 표정, 플레멘 반응이 왜 일어나는지 보습코기관의 구조와 캣닙 반응과의 차이, 병원에 가야 할 다른 입 벌림 신호까지 정리했습니다.

빨래 바구니에 코를 박고 있던 고양이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윗입술을 살짝 말아 올리고 입을 반쯤 벌린 채 허공을 바라봅니다. 찡그린 것 같기도 하고 넋이 나간 것 같기도 한 표정으로 잠깐 굳어 있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제 할 일로 돌아갑니다. 처음 보면 어디가 아픈 건지, 냄새가 너무 지독해서 질색하는 건지 걱정이 됩니다.
이 표정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플레멘 반응(Flehmen response)입니다. 냄새를 코로만 맡는 것이 아니라 입천장 쪽에 있는 별도의 감각기관으로 ‘한 번 더’ 분석하기 위한 동작이고, 고양이뿐 아니라 말, 사자, 염소 같은 여러 포유류에서 관찰됩니다.

코 말고 입천장에 있는 두 번째 냄새 탐지기
고양이의 머릿속에는 냄새를 받아들이는 길이 두 갈래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아는 일반 후각으로, 콧속 후각 상피에서 냄새 분자를 잡아 후각망울로 보내는 경로입니다. 다른 하나가 보습코기관(vomeronasal organ, VNO)입니다. 이 기관을 자세히 기술한 해부학자의 이름을 따서 야콥슨 기관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기관이 처음 기록된 것은 1732년으로, 프레데릭 라위스(Frederik Ruysch)가 기술했습니다. 이후 1813년 루트비히 야콥슨(Ludwig Jacobson)이 훨씬 자세히 기술하면서 ‘야콥슨 기관’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기관의 위치와 통로입니다. 고양이의 보습코기관은 입천장 쪽에 자리하고 있고, 앞니 바로 뒤에서 열리는 가느다란 관, 즉 절치관(incisive duct)을 통해 입 안과 연결됩니다. 다시 말해 보습코기관으로 화학 신호를 보내는 입구가 콧구멍이 아니라 입 안, 앞니 뒤쪽에 있다는 뜻입니다. 이 구조를 알고 나면 플레멘 표정이 왜 하필 입을 벌리는 모양인지가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윗입술을 말아 올리는 건 입구를 여는 동작이다
PetMD에 글을 쓴 수의사 크리스타 세라이다(Krista Seraydar, DVM)는 플레멘 반응의 전형적인 모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윗입술을 말아 올려 앞니를 드러내고, 입을 벌린 채 숨을 들이마시며, 목을 뻗거나 머리를 드는 짧은 자세라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짧은 시간 그 자세를 유지하다가 곧 평소 상태로 돌아옵니다.
이 동작 하나하나가 앞에서 본 해부학과 맞물립니다. 앞니 뒤에 절치관 입구가 있으니, 입술을 들어 올리고 입을 벌려 공기를 들이마시면 냄새 분자가 그 입구 쪽으로 흘러 들어가기 쉬워집니다. 사람 눈에는 찡그리거나 넋을 놓은 얼굴로 보이지만, 고양이 입장에서는 방금 맡은 흥미로운 냄새를 보습코기관 쪽으로 밀어 넣는 꽤 적극적인 작업입니다.
이 행동에 ‘Flehmen’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은 1930년 독일 라이프치히 동물원장이던 카를 막스 슈나이더(Karl Max Schneider)입니다. 동물원에서 여러 동물이 같은 표정을 짓는 것을 관찰하고 용어를 도입했고, 이 단어가 지금까지 학술 용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동물 건강 기업 Zoetis Petcare의 수의사 멜리사 브랜들리(Melissa Brandley)는 윗입술이 말리고, 콧방울 주변에 주름이 지고, 입이 살짝 벌어지고, 머리가 들리는 행동이 개와 고양이 모두에서 나타날 수 있지만 고양이가 이 모습을 훨씬 뚜렷하게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집에서 고양이의 플레멘이 유독 자주 눈에 띄는 이유입니다.

소변, 빨래, 다른 고양이의 뺨 — 무엇이 이 표정을 부르나
보습코기관이 주로 다루는 것은 페로몬 같은 화학 신호입니다. 워싱턴주립대(WSU) 수의대가 운영하는 과학 해설 코너 Ask Dr. Universe는 고양이가 코와 입천장의 보습코기관으로 페로몬을 감지한다고 설명하면서, 동물병원에서 고양이 얼굴 페로몬을 본뜬 합성 제품을 써서 고양이의 스트레스를 덜어 주기도 한다고 소개합니다. 그만큼 이 화학 신호가 고양이의 상태에 영향을 준다는 뜻입니다.
PetMD가 꼽는 대표적인 자극은 다음과 같습니다.
- 다른 고양이(또는 동물)의 소변 냄새
- 사람이 입었던 더러운 빨래
- 항문낭 분비물
- 다른 고양이의 얼굴에서 나오는 페로몬
- 처음 맡아 보는 흥미로운 새 냄새
공통점은 ‘누가, 어떤 상태로 이곳에 있었는가’에 대한 정보가 담긴 냄새라는 점입니다. 수컷 고양이는 암컷의 소변 냄새를 이 방식으로 분석해 짝짓기 준비 상태를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목록에 더러운 빨래와 ‘처음 맡는 새 냄새’가 함께 들어 있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사람이 하루 동안 묻혀 온 냄새나 집 안에 처음 들어온 물건의 냄새 역시 고양이에게는 읽어 볼 만한 정보입니다. 브리티시숏헤어인 딸기도 방금 벗어 둔 양말 앞에서 유독 이 얼굴을 자주 짓는데, 냄새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정보가 많은 물건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캣닙에 취한 멍한 얼굴은 다른 경로의 일이다
플레멘 이야기에서 가장 흔하게 섞이는 것이 캣닙입니다. 캣닙 냄새를 맡은 고양이도 넋이 나간 듯한 표정을 짓다 보니, ‘캣닙도 보습코기관으로 느끼는 것’이라는 설명이 꽤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실험으로 확인된 결과가 반대 방향을 가리킵니다.
1985년 하트와 리디(Hart & Leedy)가 Behavioral and Neural Biology에 발표한 연구는 고양이의 캣닙 반응, 즉 냄새를 맡고, 핥고 씹고, 뺨을 문지르고, 구르고, 뒷다리로 차는 행동이 어느 경로를 거치는지 확인했습니다. 보습코기관을 제거한 고양이에서는 캣닙 반응이 줄지 않았습니다. 반면 일반 후각을 담당하는 후각망울을 제거하자 반응이 사라졌습니다. 캣닙 반응은 플레멘이 쓰는 보습코기관이 아니라 일반 후각 경로를 통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캣닙의 활성 성분인 네페탈락톤은 콧속 후각 상피의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으로 보고 있지만, Mental Floss에 인용된 코넬대 수의사의 설명처럼 그 뒤로 이어지는 전체 메커니즘은 아직 다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정리하면, 캣닙에 반응하는 얼굴과 플레멘 표정은 겉보기에 비슷해 보일 수 있어도 서로 다른 감각 경로에서 나오는 행동입니다.

말은 코로 연결되고, 개는 아직 물음표다
플레멘은 고양이만의 버릇이 아닙니다. 사자, 호랑이, 말, 염소, 양, 아메리카들소, 타피르, 기린, 라마, 코뿔소, 자이언트판다, 하마 등 많은 포유류에서 기록돼 있습니다. 집에서 보는 고양이와 목장에서 보는 말이 이 표정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 주기 때문에 유독 눈에 띌 뿐입니다.
흥미로운 예외는 말입니다. 고양이처럼 앞니 뒤의 절치관으로 입과 이어지는 대신, 말의 보습코기관은 절치관이 없고 비구개관(nasopalatine duct)을 통해 콧속과 연결됩니다. 말 전문지 The Horse 등에 따르면, 말이 입이 아니라 코로만 숨을 쉬는 동물이라는 점이 이런 구조의 이유로 설명됩니다. 같은 플레멘이라도 신호가 들어가는 통로가 동물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에 관해서는 한 가지 덧붙일 점이 있습니다. Torcivia와 McDonnell의 2021년 논문(Animals)은 말에서 냄새 탐색 같은 일상적인 맥락을 벗어나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플레멘이 불편함의 신호일 수 있다고 보고했습니다. 이는 말에 대한 연구이고 고양이에 그대로 옮길 수 있는 결론은 아니지만, ‘평소와 다른 맥락에서 반복되는 행동은 한 번 더 살펴본다’는 원칙 자체는 어느 동물에게나 통합니다.
개는 어떨까요. 개에게도 보습코기관은 분명히 있습니다. 2020년 Frontiers in Veterinary Science에 실린 Dzięcioł 등의 연구는 살아 있는 비글 8마리와 사체 10마리를 MRI로 촬영해 개의 보습코기관을 직접 영상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도 개에게서 고양이나 말 같은 뚜렷한 플레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개에게 플레멘이 있는지는 아직 논란이 있는 문제입니다. Pageat과 Gaultier가 2003년 Veterinary Clinics of North America: Small Animal Practice에 발표한 글에서도 이 점을 짚으면서, 저자들 스스로는 개에게서 진짜 플레멘을 관찰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대신 ‘텅잉(tonguing)’이라 부르는 행동, 즉 혀를 입천장 앞쪽에 빠르게 갖다 대는 동작이 플레멘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일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개는 플레멘 대신 텅잉 같은 다른 방식으로 보습코기관을 쓰는 것일 수 있다는 시각이 있지만, 아직 단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
‘역겨워서 비웃는 얼굴’이라는 오해
플레멘 사진이 인터넷에서 ‘냄새 맡고 질색하는 고양이’로 돌아다니는 일이 많습니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콧등이 찡그려진 모습이 사람의 혐오 표정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PetMD의 설명대로 플레멘은 거부감의 표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냄새에 관심이 있어서 더 자세히 분석하려는 중립적이고 적극적인 탐색 행동에 가깝습니다. 내 옷 냄새를 맡고 이 표정을 지었다고 해서 고양이가 나를 싫어한다고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또 하나 헷갈리기 쉬운 것이 채터링입니다. 창밖의 새나 벌레를 보면서 이빨을 딱딱 부딪치거나 턱을 떨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행동인데, 입을 움직인다는 점 때문에 플레멘과 같은 것으로 묶이곤 합니다. 하지만 채터링은 냄새가 아니라 먹잇감을 볼 때 나타나는 행동으로, 플레멘과는 메커니즘이 다릅니다. 채터링이 왜 일어나는지는 여러 가설이 있을 뿐 학계에서 합의된 설명은 아직 없습니다.
지켜봐도 되는 입 벌림과 병원에 연락할 입 벌림
플레멘은 짧고, 고양이의 의식이 또렷한 상태에서 일어나며, 끝나면 바로 평소대로 돌아오는 정상 행동입니다. 문제는 입을 벌리는 이유가 플레멘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Catster와 WebVet 등은 플레멘과 혼동하기 쉬운 상황으로 구강 통증과 휴식 중 입 벌림 호흡을 꼽습니다. 아래 기준으로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플레멘일 가능성이 높은 경우
- 빨래, 신발, 다른 동물의 흔적처럼 특정 물건의 냄새를 맡은 직후에 나타난다
- 윗입술을 들고 입을 살짝 벌린 채 고개를 들고, 짧은 시간 안에 끝난다
- 끝나면 곧바로 걷고, 먹고, 부르면 반응하는 등 평소 모습으로 돌아온다
- 식욕, 활동량, 화장실 습관에 다른 변화가 없다
다른 원인을 확인해야 하는 경우
- 냄새와 상관없이 입을 자주 벌리거나 다물기 불편해 보인다
- 침을 흘리거나, 입냄새가 심해졌거나, 밥을 먹으려다 그만두는 등 식욕이 떨어졌다
이런 신호는 치아나 구강 문제를 포함해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어서, 정확한 원인 확인은 수의사의 진료가 필요합니다. 며칠 사이에 나타난 변화를 메모하거나 영상으로 남겨 두면 진료에 도움이 됩니다.
바로 병원에 연락해야 하는 경우
- 쉬고 있거나 누워 있는데도 입을 벌리고 숨을 쉰다
- 잇몸이나 혀가 푸르스름하거나 창백하다
- 자거나 쉬고 있을 때 호흡이 분당 40회를 넘는다
호흡수 기준은 WebVet, Catster 등 수의 자료가 쉬거나 잘 때 분당 40회가 넘으면 바로 진료를 받으라고 안내하는 수치입니다. 고양이가 자고 있거나 완전히 쉬고 있을 때 가슴이 오르내리는 횟수를 30초 세어 2를 곱하면 됩니다. 놀고 난 직후에 세면 잘못된 경보가 나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합니다.
쉬는 중에 입을 벌리고 숨을 쉬는 것은 냄새 탐색과 무관한 모습이고, 고양이에게 정상으로 보지 않습니다. 특히 잇몸 색 변화나 빠른 호흡이 함께 보이면 응급일 수 있으니, 온라인 정보로 판단하거나 상태를 지켜보며 기다리지 말고 즉시 동물병원에 연락하세요. 반대로 냄새를 맡은 뒤 잠깐 멍해졌다가 금세 털고 일어나는 고양이라면, 지금 막 무언가 흥미로운 정보를 읽어 낸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수의사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반려동물에게 이상 증상이 보이면 동물병원에 문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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