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 2026-10-27

고양이는 왜 높은 곳을 좋아할까? 캣타워가 필요한 이유

고양이가 냉장고나 책장 위로 올라가는 이유를 AAFP·ISFM 환경 가이드라인과 관련 연구로 짚어보고, 캣타워나 선반이 다묘 가정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정리했습니다.

창가 높은 자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갈색 줄무늬 고양이
Photo by FOX ^.ᆽ.^= ∫ on Pexels

분명 바닥에 푹신한 방석을 깔아 줬는데 고양이는 냉장고 위에 올라가 있습니다. 책장 맨 윗칸에 놓아둔 물건을 밀어 떨어뜨리고, 커튼박스 위에 몸을 접어 넣고, 손님이 오면 아무도 닿지 않는 높이로 사라집니다. 그러다 보면 두 가지가 궁금해집니다. 대체 왜 저렇게까지 높은 곳을 찾는지, 그리고 비싼 캣타워를 꼭 사야 하는 건지, 아니면 있으면 좋은 정도의 물건인지.

이 글은 미국고양이수의사협회(AAFP)와 국제고양이의학협회(ISFM)가 함께 낸 환경 가이드라인, AAFP의 2024년 고양이 간 긴장 가이드라인, 그리고 실내 고양이 환경을 다룬 연구들을 바탕으로 높이가 고양이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 근거가 어디까지 단단한지를 정리합니다.

책장 위에 앉아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흰 고양이
Photo by cottonbro studio on Pexels

냉장고 위의 고양이가 하는 일 — 내려다보며 상황을 쥐는 것

높은 곳을 좋아하는 이유로 가장 흔히 듣는 설명은 "위쪽이 따뜻해서"입니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높이와 보온의 관계를 직접 검증한 연구는 찾기 어렵습니다. 가설로 남겨 두는 편이 정확합니다.

수의사 단체들이 강조하는 쪽은 다릅니다. AAFP의 2024년 가이드라인은 수직 공간이 고양이에게 주는 기능을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주변 환경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감각, 다가오는 다른 고양이나 사람을 미리 지켜볼 수 있는 시야, 그리고 오르고 앉는 행동 자체의 기회입니다. 높은 곳은 경치를 구경하는 자리라기보다, 무엇이 다가오는지 먼저 보고 피할지 머무를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높은 곳은 영역을 위로 넓히는 일이기도 합니다. 바닥 면적은 그대로라도 선반과 캣타워가 생기면 고양이가 쓸 수 있는 층이 늘어납니다. 같은 거실 안에서도 바닥을 쓰는 고양이와 위층을 쓰는 고양이가 나뉠 수 있다는 점이 뒤에서 다룰 다묘 가정 이야기의 출발점입니다.

AAFP·ISFM의 2013년 환경 가이드라인은 건강한 고양이 환경의 다섯 가지 기둥 중 첫 번째로 "안전한 장소"를 꼽습니다. 방해받지 않고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을 말하는데, 가이드라인은 이런 장소가 바닥보다 높은 위치에 있을 때 더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상자와 캣타워는 같은 욕구가 아니다

"숨숨집이 있으니 캣타워는 없어도 되지 않나"라는 질문도 자주 나옵니다. 둘 다 고양이가 들어가 쉬는 물건이지만 하는 일이 반대에 가깝습니다.

상자는 시야를 막습니다. 바깥 자극을 덜 보고 덜 노출되게 해서, 부담스러운 상황을 견디는 대처 수단이 됩니다. 캣타워나 높은 선반은 시야를 넓힙니다. 주변을 내려다보며 상황을 파악하고 영역을 위로 늘리는 수단입니다. 하나는 세상을 가리고, 하나는 세상을 살피는 셈입니다.

그래서 둘 중 하나로 다른 하나를 대신하기 어렵고, 고양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둘 다 필요해집니다. 실제로 아래에서 소개할 연구들에서도 고양이들은 숨을 곳과 높은 조망 지점을 함께 선호했습니다. 숨는 행동 자체가 궁금하다면 레이지펫의 고양이 상자 글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벽에 설치된 여러 단의 캣 선반과 그 아래 모여 있는 고양이들
Photo by NaNa Photography on Pexels

두 고양이 사이에 시선이 오갈 때 — 다묘 가정에서 높이가 하는 역할

고양이 여러 마리를 키우는 집에서 긴장은 생각보다 흔합니다. AAFP 2024 가이드라인이 인용한 설문 조사들에서는 다묘 가정의 62.2~87.7%가 고양이 사이의 긴장을 겪었다고 답했고, 행동 클리닉을 찾은 사례 중에서는 25~31%가 고양이 간 문제였습니다.

이 긴장은 꼭 하악질이나 싸움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가이드라인이 짚는 신호 중 하나가 응시, 즉 한 고양이가 다른 고양이를 빤히 쳐다보는 행동입니다. 사람 눈에는 그냥 바라보는 것 같지만, 고양이 사이에서는 압박이 될 수 있습니다. 복도 끝에서 한 마리가 쳐다보고 있으면 다른 한 마리는 화장실이나 밥그릇으로 가는 길을 포기하기도 합니다.

가이드라인은 가구와 수직 구조물을 이 시선을 끊는 데 쓰라고 권합니다. 서로 다른 높이에 자리가 있으면 한 마리가 위로 비켜날 수 있고, 높은 선반의 측면이나 구조물이 두 고양이 사이의 시야를 가려 줍니다. 같은 공간을 쓰더라도 높이가 다르면 정면으로 마주칠 일이 줄어드는 것입니다.

AAFP는 보호자들에게 화장실, 먹이, 물, 스크래처, 높은 곳, 숨는 자리라는 여섯 가지 필수 자원을 "고양이 수 + 1"개씩, 서로 시야가 겹치지 않게 흩어 두라고 권해 왔습니다. 2024 가이드라인은 이 가운데 특히 안전한 장소(방해받지 않고 쉴 수 있는 자리)를 고양이당 하나, 여기에 하나 더 두라고 명시합니다. 앞의 여섯 가지 목록에 높은 곳이 들어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수직 공간은 장식이 아니라 밥그릇과 같은 줄에 놓인 자원이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근거는 어디까지 단단한가

"캣타워를 놓으면 스트레스가 몇 퍼센트 줄어든다" 같은 구체적인 숫자가 인터넷에 돌지만, 1차 연구로 추적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 연구가 말해 주는 범위는 이렇습니다.

렌베리(Rehnberg) 연구팀이 2015년 Applied Animal Behaviour 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서는 보딩 시설처럼 낯설고 제한된 환경에 머무는 고양이들이 개방된 공간보다 숨겨진 공간과 높은 조망 지점을 더 선호했습니다. 스트레스 점수가 높은 고양이는 낮은 고양이에 비해 개방 공간에 머무는 시간이 절반에도 못 미쳤습니다. 다만 이것은 상관관계를 본 연구이고, 대상이 낯선 시설의 고양이였다는 점에서 일반 가정 고양이에게 그대로 옮기기는 조심스럽습니다.

포먼-워슬리(Foreman-Worsley)와 판워스(Farnworth)가 2019년 실내 고양이 복지에 관한 문헌 61건을 체계적으로 검토한 결과, 은신처와 높은 휴식 공간은 환경 풍부화 요소 가운데 효과가 가장 잘 뒷받침된 쪽에 속했습니다. 그러나 61건 중 가정에서 진행된 연구는 21건뿐이었고 나머지는 보호소, 캐터리, 실험실 환경이었습니다. 연구마다 방법이 달라 비교가 어렵다는 한계도 함께 지적됐습니다.

실험실에서 무리 지어 사는 고양이 29마리에게 선반 달린 칸막이를 놓아 본 영국 연구에서는 일부 시간대에만 공격적인 상호작용이 줄었습니다. 규모가 작아 참고 수준으로 볼 만합니다. 정리하면 "높은 곳과 숨을 곳이 고양이 복지에 도움이 된다"는 방향은 꽤 일관되지만, 효과의 크기를 숫자로 장담할 단계는 아닙니다. 수의사 단체가 이를 권고 수준으로 정리한 것도 이런 근거의 총합 위에서입니다.

화분들 사이 선반에 올라가 몸을 숨긴 고양이
Photo by Helena Jankovičová Kováčová on Pexels

캣타워는 사치품인가 — 냉장고 위가 대답하는 것

고양이가 냉장고나 커튼박스 위로 올라가는 걸 버릇없는 행동으로 보기 쉽습니다. 하지만 AAFP가 높은 곳을 필수 자원으로 분류한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건 욕구를 채울 자리가 마땅치 않아 집에 있는 다른 구조물로 해결하고 있는 모습에 가깝습니다. 올라가지 못하게 막기만 하면 욕구는 그대로 남고, 고양이는 또 다른 높은 곳을 찾습니다.

그렇다고 꼭 큰 캣타워여야 하는 건 아닙니다. 벽에 다는 선반, 비워 둔 책장 한 칸, 창가 해먹도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고양이가 원하는 높이에 안정적으로 오르고 머물 수 있는 자리가 집 안에 있느냐입니다. 브리티시숏헤어인 딸기도 낯선 사람이 오면 캣타워 맨 위 칸으로 올라가 거실을 내려다보며 상황을 지켜보곤 합니다. 캣타워의 높이, 흔들림, 재질 같은 물리적 조건은 스크래칭 글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몇 개를, 어디에 — 집이 좁다면 바닥 말고 벽을 본다

"집이 좁아서 사이 나쁜 고양이들을 떨어뜨려 놓을 수가 없다"는 고민이 있습니다. AAFP 2024 가이드라인은 실내의 공간 제약이 고양이 간 긴장을 키우기 쉽다고 보고, 수직 공간을 여러 높이로 두라고 권합니다. 바닥 면적을 늘릴 수 없는 좁은 집이라면 벽면이 그 답이 됩니다. 핵심은 평수가 아니라 서로 시야가 겹치지 않게 흩어진 자원의 개수입니다.

  • 높이를 여러 단계로 나눕니다. 고양이마다 선호하는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은 개체별 선호 높이를 고려하라고 권합니다. 모든 자리가 천장 근처일 필요는 없습니다.
  • 벽을 따라 아래층과 위층에 퍼치를 나눠 설치합니다. 가이드라인에는 계단 위쪽에 자리를 더해 고양이들의 공존이 나아진 사례가 그림으로 실려 있습니다.
  • 개수는 앞의 "고양이 수 + 1"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한 방에 몰지 말고 여러 공간에 나눕니다.
  • 창가에 옆면이 높은 침대나 퍼치를 두면 소심한 고양이가 바깥과 실내를 살피면서도 몸을 숨길 수 있습니다. 이때 그 자리에서 빠져나갈 길이 두 군데 이상 있도록 배치하는 것이 가이드라인의 권고입니다. 출구가 하나뿐이면 다른 고양이가 길목을 막을 때 갇힌 자리가 됩니다.
창문에 설치된 퍼치에 누워 쉬고 있는 고양이
Photo by Arina Krasnikova on Pexels

"고양이는 떨어져도 괜찮다"는 말과 창가의 방충망

고양이는 공중에서 몸을 잘 돌리니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수의학에는 고층 낙상 증후군(high-rise syndrome)이라는 별도의 부상 범주가 있습니다. 보통 2층 정도 높이 이상에서 떨어졌을 때 생기는 부상을 묶어 부르는 이름입니다.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꼽히는 것은 열린 창입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낙상 사례 43건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86.05%가 방충망이 전혀 없는 집에서 일어났고, 모든 창에 방충망이 설치된 집은 13.95%였습니다. 창가에 캣타워나 퍼치를 두는 건 고양이에게 좋은 자리를 주는 일이지만, 동시에 창 바로 앞으로 고양이를 데려가는 일이기도 합니다. 창가 자리를 만든다면 고양이 체중을 견디는 튼튼한 방충망이나 안전창, 방묘창을 먼저 확인하고, 창을 열어 둘 때는 고양이가 닿을 수 있는지 다시 봅니다.

실내 캣타워도 고양이가 뛰어오르거나 내려올 때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자주 오르던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면

높은 곳을 좋아하던 고양이가 그 자리를 쓰지 않게 되는 변화는 그 자체로 관찰할 만한 신호입니다.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어 온라인 정보로 판단하기보다 수의사와 상담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 평소 매일 오르던 캣타워나 소파 위를 갑자기 피한다면, 특히 나이 든 고양이에서는 관절 통증 등의 가능성도 알려져 있습니다. 점프 전에 오래 망설이는지도 함께 살펴봅니다.
  • 점프를 꺼리거나 뛰어내린 뒤 갑자기 다리를 절면 외상이나 근골격계 문제일 수 있어 진료가 필요합니다.
  • 높은 곳에서 떨어진 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숨이 가쁘거나 기운 없이 늘어져 있다면 내부 손상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태를 지켜보며 기다리지 말고 즉시 동물병원에 연락하세요.

오늘 할 수 있는 일은 간단합니다. 우리 고양이가 집 안에서 어디에 올라가 있는지 한번 둘러보고, 그 자리가 안정적인지, 창과 얼마나 가까운지, 다른 고양이와 시선이 정면으로 마주치는 위치는 아닌지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며, 수의사의 진단이나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반려동물의 건강에 이상이 의심되면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