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일반 · 2026-09-15

강아지와 고양이는 세상을 어떤 색으로 볼까?

"개는 흑백만 본다"는 통설이 왜 절반만 맞는 말인지, 실제 연구로 밝혀진 강아지·고양이의 색 인지 범위를 정리했습니다.

잔디 위에서 카메라를 올려다보는 강아지 얼굴 클로즈업
Photo by Molnar Norbi on Pexels

잔디밭에 빨간 공을 던졌는데 강아지가 코를 박고 한참을 헤맨 적이 있다면, 그리고 그때 누군가 “원래 개는 흑백으로 보잖아”라고 말한 적이 있다면, 이 글은 그 문장을 확인하려고 검색창을 연 분을 위한 것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개도 고양이도 흑백으로 보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보는 색의 전부를 보는 것도 아닙니다. 두 동물의 눈은 사람보다 한 종류 적은 색 센서를 가지고 있고, 그 ‘한 종류’의 차이가 세상을 꽤 다르게 만듭니다. 언제 어떤 실험으로 이게 밝혀졌는지, 그래서 우리 집 강아지와 고양이 눈에 빨간 공이 실제로 어떻게 보이는지 순서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잔디밭에서 고개를 들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강아지
Photo by Molnar Norbi on Pexels

‘개는 흑백만 본다’는 말은 어디서 왔을까

이 통설의 출처로 가장 자주 지목되는 이름은 1930년대 미국의 개 잡지 편집자이자 내셔널 도그 위크를 만든 윌 주디(Will Judy)입니다. 그가 1937년에 낸 훈련 매뉴얼에서 개는 형태만 구분하고 세상을 회색조로 본다는 취지의 서술을 했고, 그것이 널리 퍼졌다는 설명이 여러 매체에 반복됩니다. 1940년대에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비슷한 취지의 말을 남겨 통설을 굳혔다는 이야기도 함께 따라다닙니다.

다만 이 계보는 2차 자료를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라, 원저의 문장을 직접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가 언제 이런 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못 박기는 조심스럽습니다. 확실한 것은 20세기 중반까지 개와 고양이의 색각이 제대로 측정된 적이 없었다는 쪽입니다. 사람은 물어보면 “저 둘이 같은 색”이라고 대답하지만 개와 고양이는 대답을 하지 않습니다. 색각 연구가 늦어진 진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동물에게 색을 구분하게 만들고 그 반응을 읽어내는 실험 설계가 필요했고, 그게 갖춰지기 전까지는 추측이 사실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습니다.

1989년, 개 세 마리가 색 맞추기를 해냈다

전환점이 된 연구는 1989년 학술지 Visual Neuroscience에 실린 Neitz, Geist, Jacobs의 “Color vision in the dog”입니다. 연구진은 개 세 마리를 대상으로 두 가지 행동 실험을 했습니다. 하나는 파장별로 빛을 얼마나 예민하게 감지하는지 재는 증분역치 분광민감도 측정이고, 다른 하나는 서로 다른 파장의 빛을 섞어 특정 색과 똑같이 보이도록 맞추게 하는 색 매칭입니다. 개가 “이 둘이 같아 보인다”고 행동으로 표시하면, 그 조합을 거꾸로 계산해 망막에 어떤 광색소가 몇 종류 있는지 추정할 수 있습니다.

결과는 명확했습니다. 개의 망막에서 작동하는 원추 광색소는 두 종류였고, 각각 파장 약 429나노미터(파란색 영역)와 약 555나노미터(노랑에서 초록에 걸친 영역)에서 가장 민감했습니다. 색 센서가 두 종류인 시각을 이색형 색각(dichromacy)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은 대체로 세 종류를 가진 삼색형이니, 개는 사람에서 한 채널이 빠진 형태인 셈입니다.

개 세 마리는 적은 표본처럼 보이지만, 이 결론은 이후 다른 방향에서도 뒷받침됐습니다. Jacobs는 갯과 동물들의 광색소를 조사한 연구와 1993년 Biological Reviews의 포유류 색각 총설에서, 개를 포함한 갯과 동물이 공통적으로 약 555나노미터와 430~435나노미터 부근에 최대 민감도를 갖는 두 원추 색소를 지닌다고 정리했습니다. 개 한 마리의 특이한 눈이 아니라 계통 전체의 설계라는 뜻입니다.

강아지 눈동자를 가까이에서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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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센서로 만들 수 있는 색, 만들 수 없는 색

색은 물체에 붙어 있는 성질이 아니라 뇌가 만들어내는 해석입니다. 망막의 원추세포는 각자 민감한 파장대가 다르고, 뇌는 여러 센서가 보낸 신호의 ‘비율’을 비교해 색을 만들어 냅니다. 센서가 세 개면 비교할 수 있는 쌍이 늘어나 구분 가능한 조합이 많아지고, 두 개면 그 조합이 크게 줄어듭니다.

이색형 색각에서 중요한 개념이 하나 있습니다. 두 센서의 반응 비율이 회색과 같아지는 파장 지점, 즉 중성점(neutral point) 입니다. 이 파장의 빛은 아무리 선명해도 그 동물에게는 무채색과 구분되지 않습니다. 사람 중에도 이런 시각을 가진 경우가 있는데, 적록색맹이라 부르는 유형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개의 색 세계를 설명할 때 사람의 적록색맹이 자주 인용되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구조가 실제로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VCA 동물병원 그룹의 설명을 비롯해 여러 수의 자료가 정리한 바에 따르면, 개의 시야에서 색은 대략 이렇게 정리된다고 추정됩니다.

  • 빨강은 선명한 붉은색으로 보이지 않고 어두운 갈색이나 검정에 가깝게 인식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 노랑, 주황, 초록은 서로 뚜렷이 갈라지지 않고 비슷한 노란빛 계열로 뭉뚱그려집니다.
  • 파랑은 비교적 또렷하게 구분되고, 보라는 파랑과 거의 같게 보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여기서 핵심은 “색이 없다”가 아니라 “색의 축이 하나 줄었다”는 점입니다. 개의 세계에는 파랑에서 노랑으로 이어지는 축이 살아 있고, 빨강에서 초록으로 이어지는 축이 접혀 있습니다.

고양이의 505나노미터 — 색이 사라지는 지점

고양이 쪽은 개보다 결론이 늦게 정리됐습니다. 1977년 Science에 실린 Ringo 연구팀의 논문은 제목부터 “Trichromatic Vision in the Cat”으로, 고양이가 세 종류의 색 센서를 가졌을 가능성을 제기했습니다. 다만 이후 연구들이 이 주장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했고, 현재는 소수설로 언급되는 정도입니다.

비교적 최근의 정리는 2016년 Experimental Eye Research에 실린 Clark과 Clark의 연구입니다. 제목이 “Neutral point testing of color vision in the domestic cat”인 데서 짐작되듯, 앞에서 설명한 중성점을 직접 찾아보는 실험이었습니다. 고양이 망막에도 두 종류의 원추세포가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나는 약 450나노미터의 단파장 쪽, 다른 하나는 약 555나노미터의 장파장 쪽입니다.

연구진은 고양이 두 마리에게 특정 파장의 빛과 회색을 구분하도록 훈련시킨 뒤 파장을 바꿔가며 시험했습니다. 고양이들은 456~497나노미터 구간과 510~524나노미터 구간에서는 회색과 구분해냈습니다. 반면 505나노미터 부근에서는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이 지점이 고양이의 중성점입니다. 즉 그 파장의 빛은 고양이에게 회색으로 보인다는 뜻이고, 동시에 그 좌우로는 색을 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505나노미터라는 값이 사람의 제2색맹 (deuteranope, 초록 채널이 빠진 유형)에서 측정되는 중성점과 거의 일치한다는 점입니다. 서로 다른 종에서 같은 자리에 색의 공백이 생긴 셈입니다. 요약하면 고양이도 개와 마찬가지로 이색형이고, 파랑에서 청록에 이르는 영역과 황록 계열은 구분합니다. 고양이가 흑백만 본다는 말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해질 무렵 창가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는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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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색을 ‘쓰기도’ 할까 — 2013년의 확인

센서가 있다는 것과 그 정보를 실제로 쓴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개가 색을 어느 정도 감지하더라도, 물체를 찾을 때 밝고 어두움만 참고한다면 실생활에서 색은 별 의미가 없을 테니까요. 실제로 오랫동안 “개는 색보다 밝기에 의존한다”는 가정이 통용됐습니다.

이 가정을 정면으로 시험한 연구가 2013년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에 실린 Kasparson, Badridze, Maximov의 “Colour cues proved to be more informative for dogs than brightness”입니다. 연구진은 개 여덟 마리를 대상으로 색 단서와 밝기 단서가 서로 어긋나도록 자극을 설계했습니다. 훈련 때 익힌 색을 따르면 한쪽을, 밝기를 따르면 다른 쪽을 고르게 되는 상황입니다. 개들은 밝기가 아니라 색 쪽을 따랐습니다. 제목 그대로, 개에게는 색 단서가 밝기 단서보다 더 유용한 정보였다는 결론입니다.

이 결과는 앞의 이야기와 합쳐서 읽어야 합니다. 개가 구분하는 색의 폭은 사람보다 좁습니다. 하지만 그 좁은 폭 안에서는 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자기 장난감을 용케 찾아내는 강아지가 형태와 냄새만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색을 덜 보는 대신 무엇을 얻었나

이색형이라는 말에 ‘결함’이라는 뉘앙스를 붙이기 쉽지만, 망막은 제한된 면적을 나눠 쓰는 기관이라 어느 쪽을 늘리면 다른 쪽이 줄어드는 구조입니다. 개의 망막은 사람에 비해 색을 담당하는 원추세포보다 명암과 움직임을 담당하는 간상세포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간상세포는 적은 빛에도 반응하기 때문에, 이런 구성은 어두운 환경에서 보는 데 유리합니다. 대신 색과 세부를 정밀하게 가려내는 데에는 불리합니다. 세포 비율의 구체적인 숫자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어 여기서는 방향만 적어둡니다.

같은 관점에서 보면 고양이의 눈도 이해하기 쉬워집니다. 해가 진 뒤에 활동하는 사냥꾼에게 필요한 것은 색의 미세한 차이가 아니라 어스름 속에서 움직이는 작은 대상을 놓치지 않는 능력입니다. 개와 고양이의 시각은 사람 시각의 열화판이 아니라, 다른 문제를 풀도록 맞춰진 다른 해법에 가깝습니다. 색각 하나만 떼어 우열을 매기는 비교가 성립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잔디밭에 엎드린 강아지 앞에 놓인 파란색 장난감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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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장난감은 무슨 색을 사야 할까

지금까지의 내용을 실생활로 옮기면 이렇게 정리됩니다. 개와 고양이가 비교적 잘 구분하는 것은 파랑 계열과 노랑 계열입니다. 반대로 빨강과 초록은 서로 뭉뚱그려지고, 특히 빨강은 어둡게 가라앉아 보이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초록 잔디 위에 놓인 빨간 공은 사람 눈에는 가장 눈에 띄는 조합이지만, 개 눈에는 배경과 대비가 크지 않은 어두운 덩어리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원리만 놓고 보면 파랑이나 노랑 장난감이 잔디 배경에서 더 도드라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지는 않는 편이 좋습니다. “장난감 색을 바꾸면 발견 속도가 몇 퍼센트 빨라진다” 같은 구체적인 수치를 내세우는 문구를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통제된 실험 자료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색 대비가 유리해진다는 원리까지가 지금 말할 수 있는 범위이고, 그 이상은 제품을 팔기 위한 문장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애초에 개와 고양이는 색 하나로만 물체를 찾지 않습니다. 후각과 움직임, 그리고 그 물건이 자기 것이라는 학습된 기억이 함께 작동합니다. 색을 바꿨는데도 잘 못 찾는다면 그건 색의 문제라기보다 공이 풀숲에 묻혀 움직이지 않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저희 집 푸들 신디도 굴러가는 동안에는 바로 쫓다가, 멈춘 순간부터 코를 쓰기 시작하더군요.

실내 환경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노즈워크 매트나 간식 퍼즐처럼 대상을 찾아내야 하는 물건이라면, 바닥재나 매트와 색 대비가 큰 쪽이 조금 더 수월합니다. 반대로 굳이 색을 맞출 필요가 없는 물건에 색 고민을 얹을 이유는 없습니다. 결국 이 정보의 쓸모는 “빨간 장난감을 사면 안 된다”가 아니라, 잘 못 찾는 것처럼 보일 때 아이를 탓하지 않게 되는 데 있습니다.

색각과 시력 저하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마지막으로 구분해둘 것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이색형 색각은 개와 고양이가 원래 가지고 태어나는 정상적인 감각 구조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나빠지는 종류의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변화가 관찰된다면 색각과는 별개의 문제로 보고 접근해야 합니다.

  • 익숙한 집 안에서 가구나 문턱에 부딪히기 시작한 경우
  • 어두워지면 유독 움직이지 못하거나, 계단과 소파를 갑자기 꺼리는 경우
  • 눈동자가 뿌옇게 흐려 보이거나 색이 달라 보이는 경우
  • 눈을 자주 감고 있거나 비비고, 눈물과 분비물이 늘어난 경우

이런 신호의 원인은 여러 가지일 수 있고, 온라인 정보로 어느 쪽인지 가려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통증이 있어 보이거나 짧은 기간에 급격히 변한 경우라면 판단을 미루지 말고 바로 동물병원에 문의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눈은 진행이 빠른 부위라 관찰 기간을 길게 잡는 것 자체가 손해가 될 수 있습니다. 병원에 갈 때는 언제부터 어떤 상황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는지, 조명이 밝을 때와 어두울 때 차이가 있는지를 메모해 가면 진료에 도움이 됩니다.

정리하면, 우리 집 강아지와 고양이는 세상을 흑백으로 보지 않습니다. 파랑과 노랑이 살아 있고 빨강과 초록이 겹쳐 보이는, 사람보다 한 축이 접힌 세계를 봅니다. 대신 어둠 속에서는 우리보다 잘 보고, 그 차이는 부족함이 아니라 다른 선택의 결과입니다.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잔디밭에 던질 공 하나를 파란색으로 바꿔보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며, 반려동물의 눈 상태나 시력 변화가 걱정된다면 동물병원에서 수의사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