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일반 · 2026-09-30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후, 슬픔은 왜 가볍게 여겨지지 않아야 할까

반려동물 사별 후 나타나는 애도 반응이 왜 인간관계의 상실만큼 크게 다가오는지 연구로 살펴보고, 애도 과정을 건강하게 지나는 방법과 도움을 구할 곳을 정리했습니다.

소파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여성
Photo by Liza Summer on Pexels

반려동물을 보내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현관문을 열 때마다 발소리를 기다리게 되고, 밥그릇을 치우지 못한 채 그대로 두고 있을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새로 한 마리 들이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되기는커녕 더 외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렇게까지 힘든 게 이상한 건 아닌지, 언제쯤 괜찮아지는 건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반려동물을 잃은 뒤의 슬픔은 과장된 감정이 아닙니다. 최근 연구들은 이 슬픔이 가족을 잃었을 때의 애도와 같은 구조로, 비슷한 무게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래에서는 보호자들이 실제로 많이 묻는 질문 순서대로, 왜 이렇게 아픈지부터 어디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까지 정리했습니다.

창가 안락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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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동물인데”라는 말이 유독 아프게 들리는 이유

상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슬퍼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게 허용되지 않을 때 겪는 슬픔을 학계에서는 ‘박탈된 애도(disenfranchised grief)’라고 부릅니다. 반려동물 사별은 이 개념을 설명할 때 대표적으로 다뤄지는 사례입니다(Cordaro, 2012, Journal of Mental Health Counseling).

사람을 잃었을 때는 장례가 있고, 조문이 있고, 회사에서도 휴가를 줍니다. 반면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은 다음 날 아무 일 없다는 듯 출근해야 하는 경우가 많고, 슬픔을 드러내면 “유난스럽다”는 눈치를 받기도 합니다. 겉으로 표현할 자리가 없으니 슬픔은 안으로 쌓이게 됩니다.

이건 단지 서운한 기분의 문제가 아닙니다. 2019년 학술지 Anthrozoös에 실린 Spain, O’Dwyer, Moston의 연구에서는 반려동물 사별 후 슬픔이 깊은 상태에서 박탈된 애도까지 겹친 사람은, 상실을 겪은 뒤 삶을 다시 의미 있게 재구성하는 ‘외상후성장’이 덜 나타나는 경향이 확인됐습니다(응답자 133명 온라인 조사). 슬픔이 깊은데 그 슬픔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험까지 겹치면, 상실을 딛고 다시 일어서는 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슬퍼해도 된다”고 스스로 허락하는 것이 애도의 첫걸음이 됩니다.

영국 성인 975명 조사 — 형제·배우자를 잃은 슬픔과 비슷한 수치

2026년 PLOS ONE에 발표된 Philip Hyland 연구팀의 논문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다뤘습니다. 연구팀은 2024년 3월 영국 성인 975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를 진행하고, 사별 후 애도 반응을 측정하는 도구(IGQ-CC)로 결과를 분석했습니다.

  • 반려동물을 잃은 사람의 7.5%가 세계보건기구 진단 기준(ICD-11)상 ‘지속성 비애장애’에 해당했습니다.
  • 이는 형제를 잃은 사람(8.9%), 배우자를 잃은 사람(9.1%)과 비슷한 수준이었습니다.
  • 반려동물과 사람을 모두 잃어본 응답자 중 21%는 반려동물의 죽음을 “가장 고통스러웠던 상실”로 꼽았습니다.
  • 애도 증상이 나타나는 구조 자체도 사람을 잃었을 때와 같은 형태로 측정됐습니다.

미국수의사회(AVMA)도 공식 안내에서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의 애도 과정은 가족이나 친구를 잃었을 때 경험하는 것과 유사하다고 설명합니다. 국내 조사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KB경영연구소의 「2025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반려인 1,000명 설문)에 따르면,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의 83.2%가 우울감을 겪었고, 그중 16.3%는 그 고통이 1년 이상 이어졌다고 답했습니다.

매일 산책을 나가고, 밥을 챙기고, 퇴근하면 가장 먼저 반겨주던 존재는 하루의 리듬 그 자체였습니다. 그 존재가 사라지면 일상 곳곳에 빈자리가 생기는 것이 당연합니다.

텅 빈 방에 햇살만 비치는 조용한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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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이런 게 정상일까?” — 5단계에 나를 맞추지 않아도 되는 이유

애도를 이야기할 때 흔히 부정, 분노, 협상, 우울, 수용으로 이어지는 ‘5단계’가 언급됩니다. 그래서 “나는 아직 분노 단계인가”, “수용했다고 생각했는데 왜 다시 무너지지” 하며 스스로를 점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 모델은 원래 엘리자베스 큐블러로스가 말기 환자 본인이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관찰하며 정리한 것으로, 남겨진 사람의 애도를 설명하려고 만든 틀이 아닙니다. 큐블러로스 자신도 이 단계들이 정해진 순서대로 차례차례 지나가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실제 애도는 직선이 아니라 파도에 가깝습니다. 한동안 괜찮다가 산책로를 지나거나 비슷한 털색의 강아지를 보고 갑자기 무너질 수 있고, 슬픔과 안도감, 죄책감이 한꺼번에 밀려오기도 합니다. 단계를 건너뛰었다고, 혹은 되돌아갔다고 해서 잘못 애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기에 도움이 되는 것은 대단한 방법이 아닙니다. 식사와 수면처럼 기본적인 생활 리듬을 최대한 유지하고, 반려동물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하고, 사진을 정리하거나 편지를 써보는 것처럼 슬픔을 밖으로 꺼낼 통로를 만드는 것입니다. 유품을 언제 정리할지, 새 반려동물을 언제 들일지에도 정답은 없습니다. 주변의 재촉이 아니라 내 마음의 속도를 기준으로 삼으면 됩니다.

안락사를 결정해야 했다면 — 떠나기 전부터 시작되는 슬픔

오랜 투병 끝에 안락사를 결정하는 보호자들은 반려동물이 떠나기 전부터 이미 깊은 슬픔을 겪습니다. 이를 ‘예기 애도(anticipatory grief)’라고 하며, 흔하게 나타나는 정상적이고 강렬한 반응입니다.

이후에는 “조금 더 기다렸어야 했나”, “내가 너무 일찍 포기한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따라오기 쉽습니다. 수의학계에서는 이 결정을 포기가 아니라, 더 이상의 고통을 막기 위해 보호자가 끝까지 책임을 다한 결정으로 바라보도록 권합니다(dvm360). 결정 과정에서 궁금했던 점이 남아 있다면, 진료를 맡았던 수의사에게 다시 물어보는 것도 죄책감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현관문 앞 포치에 홀로 앉아 있는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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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강아지가 달라졌다면 — 426가구 조사에서 나타난 변화

함께 지내던 동물이 떠난 뒤, 남은 반려동물이 평소와 다르게 행동한다는 이야기는 자주 들립니다. 2022년 Scientific Reports에 실린 Uccheddu 등의 연구는 개를 두 마리 이상 키우다 한 마리를 잃은 이탈리아 보호자 426명을 조사해, 남은 개들의 변화를 정리했습니다.

  • 관심이나 애정을 더 요구하게 됨: 67%
  • 놀이가 줄어듦: 57%
  • 활동량이 줄어듦: 46%
  • 잠이 늘어남, 두려움이 늘어남: 각각 35%

두 개의 관계가 친밀했을수록 변화가 더 컸고, 이 변화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줄지 않았습니다. 연구진은 이를 단순한 환경 변화보다 함께 지내던 상대를 잃은 영향으로 해석했습니다. 눈여겨볼 점은 보호자 자신의 슬픔이나 분노가 클수록 남은 개의 두려움 증가와 관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보호자와 남은 반려동물이 서로의 상태에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고양이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타날 가능성이 연구되고 있지만, 아직은 개에 비해 알려진 것이 적습니다.

남은 아이에게는 산책, 식사, 놀이 시간 같은 익숙한 일과를 최대한 유지해주는 것이 기본입니다. 다만 식욕이 크게 떨어지거나 기운이 없는 상태가 이어진다면 슬픔 때문이라고 단정하지 말고, 다른 건강 문제가 겹쳐 있을 수 있으니 동물병원에서 확인받는 것이 안전합니다.

아이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 “잠들었어” 대신 솔직하게

아이가 상처받을까 봐 “멀리 여행 갔어”, “잠들었어”라고 둘러대고 싶어지는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하지만 이런 표현은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혼란이나 배신감으로 이어질 수 있고, 어린아이의 경우 잠드는 것 자체를 무서워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나이에 맞는 쉬운 말로, 하지만 사실대로 설명하는 방법이 일반적으로 권장됩니다.

  • 반려동물이 죽은 것은 아이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해줍니다.
  • 엄마나 아빠도 곧 죽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는 아이도 있으니, 그렇지 않다고 안심시켜 줍니다.
  • 사진첩을 만들거나 발자국 도장을 찍는 등, 함께 기억할 수 있는 기념물을 만들 기회를 줍니다.
  • 어른이 슬퍼하는 모습을 적당히 보여주는 것도 괜찮습니다. 슬퍼해도 된다는 것을 아이가 자연스럽게 배웁니다.

혼자 버티지 말아야 할 신호

대부분의 슬픔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무게가 달라지지만, 일부는 오래 머물며 삶 전체를 멈춰 세우기도 합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다음과 같은 모습이 나타나면 복합성 애도(complicated grief)의 신호일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 출근, 끼니 챙기기, 사람 만나기 같은 일상생활이 거의 불가능하다
  • 몇 달, 길게는 몇 년이 지나도 슬픔이 전혀 옅어지지 않는다
  • 극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거나 스스로를 고립시킨다
  • 술이나 다른 물질로 감정을 무마하려 한다
  • 스스로를 해치고 싶거나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신호가 있다면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태일 수 있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나 심리상담 전문가를 찾는 것을 망설이지 마세요. 특히 자해나 자살에 대한 생각이 든다면 지금 바로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또는 보건복지상담센터 129에 전화하세요. 이런 상황은 온라인 정보로 혼자 판단할 일이 아닙니다.

펫로스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

펫로스를 전문으로 다루는 상담 창구가 국내에도 있습니다. 운영 시간과 프로그램 일정은 바뀔 수 있으니, 이용 전에 각 기관에 먼저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 사랑의전화복지재단 펫로스증후군 전문 전화상담: 1566-2525
  • 비영리단체 카루소(CALUSO): 이메일 petloss@caluso.org, 전화 02-2696-7942
  • 서울 강남구 펫로스 상담 프로그램: 강남구민 대상 무료 4회 과정(회당 정원 8명). 모집 시기와 회차는 매번 달라질 수 있으니 구청 공지를 확인하세요.
  • 진료를 맡았던 동물병원: 미국수의사회(AVMA)는 담당 수의사가 지지 모임, 상담 전화, 애도 상담사 등을 소개해 줄 수 있다고 안내합니다. 국내에서도 다니던 병원에 관련 정보를 물어볼 수 있습니다.
  • 해외 상담(영어): 미국 코넬대학교 펫로스 지원 핫라인 607-218-7457(무료, 수의대생 자원봉사로 운영되며 계절별 운영 시간이 다름), ASPCA 펫로스 지원 핫라인 (877) 474-3310
  • 위기 상황: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보건복지상담센터 129

오늘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아도 됩니다. 떠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 한 명에게 연락하는 것, 혹은 위 번호 중 하나를 저장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작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전문적인 의료·심리 상담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슬픔이 일상생활을 어렵게 할 정도로 지속되거나 위기감이 느껴진다면 정신건강 전문가나 위기상담 전화의 도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